2021. 8. 8. 00:53ㆍ일상이야기
장인은 도구탓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장비탓을 하면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근데 사실 작업할 때마다 가장 이것저것 따지는게 장인들 아닌가 싶다.
유튜브에 나오는 셰프들만 봐도 원재료, 칼, 도마 등등 세상 까탈스럽게 고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번 학기(2021-1)에 데이터센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시작하면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매킨토시나 리눅스면 할만할 텐데 윈도우면 꽤나 고생할겁니다 ㅎㅎ"
알게 뭐람.
이게 내 첫번째 생각이었다.
2016년, 새내기로 입학하면서 호기롭게 맥북 프로 15인치를 램 빵빵, 스토리지 빵빵 옵션으로 한 대 뽑았다가 크게 데인 경험이 있는 나에겐 짜증나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오니, 나의 역대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TMI 시동걸림)
나의 손을 거쳐간 노트북들...
대학교 입학 후, 한달만에 맥북을 환불해버리고 삼성 시리즈9 메탈을 구매했다.
램 8GB, 스토리지 128GB, CPU는 인텔 i5인데 얇고 가벼운 울트라북이라는 이유로 상당히 비싸게 주고 샀다.
컴잘알들은 속터질법한 선택이다.
그래도 당시엔 과제를 위한 간단한 문서작업, 아주아주아주 간단한 코딩이 노트북 사용의 전부였기에 아주 만족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군필 복학생이 돼버렸다.
예전까지만 해도 쌩쌩했던 삼성노트북이 시름시름 지병을 앓기 시작했다.
아무리 밥을 먹여도 속이 금방 꺼지는지 항상 배터리는 빨간불이었다.
그래서 배터리를 새로 바꿔줬더니 그냥 지구력 좋은 바보 온달이 됐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올해 3월 초였나 새 노트북을 급하게 주문했다.
새학기 시즌이면 컴퓨터 값이 오를대로 올랐을 텐데 그냥 대책없이 주문했다. (컴잘알분들 분노게이지 ++)
씽크패드 T14s AMD CTO 버전이다.
램 8GB로 답답했기에 램에 대한 갈증이 매우 컸다.
주변에 16GB면 충분할거라 했지만 이미 눈은 돌아간 상태.
램 32GB, 스토리지 512GB, AMD Rygen7 Pro 스펙으로 CTO를 주문했다.
괜히 테크유튜브를 보고 뽐뿌와서 LTE도 되는 셀룰러 모델을 주문했다.
그야말로 투투투투머치 스펙.
삼성, LG에서 쏟아져나오는 흔한 은빛 노트북에 질려버린 나에게 시크한 검정색의 씽크패드는 잘빠진 비즈니스 서류가방 같았다.
이래서 남자들이 컴퓨터에 돈을 쓰는 구나 싶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성능도 받쳐주니 세상 만족스러웠다.
다시 21년으로 돌아와서...
교수님의 경고아닌 경고(?)를 가뿐히 무시한 나는 윈도우로 실습을 진행했다.
내가 수강한 데이터센터 프로그래밍 수업은 도커와 쿠버네티스 실습을 진행하며, 클라우드와 컨테이너 기술에 대해 다루었다.
도커와 쿠버네티스가 리눅스 기반(?)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라서인지 매킨토스, 리눅스 OS랑은 좀 친한거 같은데 윈도우랑은 영 잘 못지내는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상 머신을 돌리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Hyper-V로 진짜 개고생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도커와 쿠버네티스에서 사용하는 명령어들이 CMD와 Powershell에서 안먹히는 경우도 많았다.
하여튼 교수님이 뭐 하나 작동하시면, 난 해야 할게 너무 많고 오류창이 계속 밀려들어왔다.
구글에 열심히 검색해서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대충 늘 이런식이었다.
- 나: 이게 이렇게 저렇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gg
- 구글: 아 그거 이렇게 저렇게 해봐
- 나: 그래도 안되는데... 저 근데 윈도우입니다.
- 구글: 아 뭐야 윈도우였어? 그럼 이거도 설치하고 저것도 설치하고 컴퓨터 껐다켜봐.. 미리 말을 좀 하지
- 나: ;;
뭐지 나만 윈도우 쓰는 거야?
내가 뭘 잘못한거야 아님 윈도우라서 뭐가 또 호환이 안되는거야?
아무 죄 없는 씽크패드에 대한 불신이 하늘 높게 치솟았다.
결국 나는 이 수업의 마지막 과제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사실 다 하긴 했는데 내 컴퓨터에서 실행이 안되서 디버깅 없이 바로 제출해버렸다.
첫 디버깅을 교수님 컴퓨터에서 하게 되는 대참사가 발생해버린 것.
다행히 기말고사에서 극적으로 회생해서 A를 받았다. (데헷)
아무튼 윈도우 OS에 아주 질려버릴대로 질려버렸다.
그래서 VMware로 리눅스를 얹어서 사용해보기도 했는데, VMware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갑자기 블루스크린이 뜨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만약에 비대면 시험중에 블루스크린이 떠버린다?
상상도 하기 싫다.
VMware 바로 지워버렸다.
그래서 다시 맥북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씽크패드에 내 통장을 다 쏟아버린 상황...
씽크패드를 살 때, 맥북에 M1칩이 처음 들어가기 시작한 터라 M1칩에서 잘 안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이 꽤 있다고 해서 제꼈었다. (도커 포함)
그때는 나름 똑똑하게 씽크패드로 골라샀다고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버리고 싶다.
현타가 너무 쎄게 왔다.
원래 나는 데이터분석 한놈만 팬다는 마인드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번 데이터센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면서 클라우드에 흥미도 생겼고, 회사 채용공고를 보면 클라우드에 대한 수요가 많아보여서 이번 여름방학에 클라우드(AWS)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맥북이 너무너무 갖고 싶어진 것.
중고 맥북을 열심히 알아보다가 괜찮은 매물을 발견했다.
찾았다 내 중고 맥북
살면서 중고거래를 한 번도 안해봤다.
근데 사람이 돈이 궁해지니까 바로 하게 되더라
내가 중고로 업어온 맥북은 2015 Early 버전으로 램8GB, 스토리지 256GB, CPU 인텔 i5다.
램을 보고 얘가 또 8GB로 왔네 싶겠지만, 2012 mid 버전에 램4GB짜리 맥북 에어를 한 번 써봤는데 생각보다 짱짱해서 8GB로 샀다.
사실 뭐 돈이 없는거다.
그게 전부다.
전에 사용하시던 분이 물건을 깔끔하게 사용하는 스타일이신 것 같다.
직거래로 물건을 받아왔는데, 판매자분을 딱 뵙자마자 이건 사도 되겠다 싶었다.
직거래하면서도 상태를 확인하긴 했다만, 괜히 걱정되서 집에서 다시 점검해봤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이 글의 첫 부분에서 괜히 장인 이야기를 하면서 거들먹거렸다만 사실 난 장인이 아니다.
장인은 커녕 어디가서 컴퓨터를 전공했다고 말하기도 부담스럽다.
장인들도 도구에 따라 본인 실력이 좌우된다고 하던데, 나같은 허접이도 좀 괜찮은 도구를 갖고 있으면 평타는 치지 않을까라는 희망섞인 생각으로 맥북을 업어온 것 같다.
앞으로 맥북으로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 겠다.